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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이야기

오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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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산읍에서 약 4㎞쯤 더 가면 오미동이란 풍산 김씨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풍산김씨의 세력이 당당하여 출중한 인물들이 많이 나오고 가세도 든든하여 이웃 마을에서 부러워하는 부촌이었다. 이 집안의 작은집에서 아들 9형제를 낳았는데 이렇게 많은 아들을 낳은 것도 천복인데 모두 재기가 출중하고 총명이 남보다 뛰어나 인근 마을사람들도 칭찬이 자자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막내아들이 제일 영리하여 내외의 귀여움을 독차지하였다.


 이 때 안동부사는 자식이 없어 적적한 나날을 보내던 중 김씨댁의 9형제 이야기를 듣고 그중 총명하고 귀여운 막내아들을 데려다 훌륭히 기르겠다고 하여 마침내 부사댁에서 명문자제로 귀히 자라게 되었다. 하나를 배우면 백을 통하는 총명에다 깍듯한 예의범절과 부모에게 대하는 깊은 효심도 있어 부사는 친아들처럼 사랑하였으며 이동할 때마다 데리고 다녔다.


 몹시 무더운 여름 어느 날 막내아들은 더위를 식힌다고 낙동강에 뱃놀이를 나갔다. 영호루 앞에서 뱃놀이를 즐기다가 호기심에 사람이 없는 깊은 곳까지 가게 되었다. 물살이 세어지자 노 젓는 손에 균형을 잃어 배가 뒤집히는 바람에 익사하고 말았다. 부사와 온 마을사람들은 매우 슬퍼했다. 특히 아우를 잃은 나머지 형제들의 슬픔은 매우 컸다. 그들은 열심히 글을 읽어 훌륭한 인재가 되는 것이 아우의 죽음에 대한 형제의 정이라 생각하여 학업에 열중했다. 드디어 한 과거에서 5형제가 다같이 급제하게 되었다.


 이 경사스런 소문이 전국에 퍼지니 이를 시기한 무리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들은 열심히 임금께 무고를 하기 시작했다.


"5형제가 동시에 등과한 것은 불길한 징조이며 그곳은 필시 보통 지형이 아닐지니 이를 그냥 두면 역모가 날 것이옵니다. 처단하여 원화를 소복하기를 바라옵니다."

하고 왕에게 연일 상소를 올렸다.


 왕이 이 말을 듣고 처음엔 시기하는 무리의 참소라고 생각했으나 횟수가 잦아지자 마음이 움직이게 되었다. 임금은 당시 풍수지리에 뛰어난 지관을 밀파하여 자세히 조사하도록 하였다. 밀령을 받은 칙사가 지형을 조사해보니 역모의 땅 같지는 않았으나 어명인지라 김씨네 선조의 묘지를 파보기로 하였다.

 무덤을 반쯤 팠을 때 이상하게도 붕어 세 마리가 나오지 않는가! 그런데 한 마리가 펄쩍 뛰어 오르더니 저만큼 나가 죽었다. 그 죽은 자리에 훗일 절을 지은 것이 지금의 광생의 절이다. 그리고 다른 한 마리는 갯가에 뛰어나가 죽었는데 죽은 곳에 비문없는 비석을 세워 지금까지 남아있다. 마지막 한 마리는 그 자리에서 죽었다. 괴이하게 생각한 지관이 보니 명산혈이 산줄기를 타고 뻗히었는지라 혈을 타고 가보니 예천군 고평면 오천동에서 끊어져 있으므로 이는 역모가 날 징조가 아님을 확인하게 되었다.


 지관은 오히려 명당의 무덤을 판 것을 후회하여 서울로 올라가 왕에게 사실대로 아뢰니 왕도 무덤을 파헤치기까지 한 것을 퍽 애석히 생각하여 이 마을에 새 이름을 지어주니 5형제가 한꺼번에 과거에 급제한 것은 과연 아름다운 일이란 뜻에서 오미동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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