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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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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조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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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와 분열의 씨앗은 그날 뿌려졌습니다. 9.11테러로 자국민 2977명이 사망하자 미국은 알카에다와 탈레반척결을 내세우며 아프간을 일방적으로 공격했습니다. 인종·종교를 둘러싼 갈등과 정치적 분열, 극단주의가 발호하는 진정한 21세기의 서막이 시작된 것입니다.

 

갑자기 삶의 터전이 전쟁터로 변하고, 생명과 재산이 미군의 일상적 공격 목표가 된 아프간은 지옥의 땅이 되었습니다. 30여만 명의 아프간인들이 희생당했고 수백만의 부상과 난민이 남겨졌습니다. 전쟁은 20년 동안이나 계속되었지만 아프간의 자립심 강한 민족성은 강고했고 탈레반은 끈질겼습니다.

 

결국 전쟁의 시작이 그랬던 것처럼 어느날 갑자기 미국이 도망치듯 철수 시한을 정했고, 모두의 예상과 달리 철수 시한보다 보름 먼저 탈레반이 수도 카불에 무혈 입성하자 혼돈은 극에 달했습니다. 30만 명이나 된다는 정부군은 무기를 버리고 도망쳤고, 정부 각료는 대통령부터 돈 보따리를 챙겨 가장 먼저 달아났습니다. 미국이 20년 공들여 세운 정부는 허무하게 무너져 버렸습니다. 언론을 통해 못이 박히도록 쏟아내던 정의·자유·민주·인권 등 전쟁의 가치와 명분도 함께 신기루처럼 사라졌습니다.

 

전쟁을 일으켜 아프간을 아비규환의 땅으로 만든 미국이나, 거기에 협조한 나토 등 서방군은 탈출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이들에 협조하던 아프간 인사 수만 명이 내륙국가의 유일한 탈출구인 공항으로 떼 지어 몰려드는 모습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잔혹사입니다. 공항진입에 성공한 이들 중 일부가 조금이라도 먼저 탈출하려고 이륙하는 비행기 바퀴와 날개에 무모하게 매달리다 추락하는 장면은 안타까움 보다는 강렬한 연민이었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절박함으로 내몰았을까요.

 

1979년 소련의 아프간 침공은 19791월 친미 팔레비왕조가 무너진 이란혁명이 성공하자, 중동에서의 교두보마련을 위해 과격 이슬람단체를 지원하여 아프간의 사회주의 정부를 흔든 미국의 작전에 소련이 넘어간 결과였습니다. 10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아프간은 10년 동안 싸우며 전쟁에 승리했고 소련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소련 침공 당시 미국이 무기를 지원하며 저항을 부추겼고, 이 도움으로 승리를 이끈 이슬람 단체가 탈레반과 알카에다입니다.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면 미국의 일방적 아프간 침공은 모순적 행동입니다. 11년 만에 다시 미국의 공격을 받은 아프간의 저력과 정신은 강했습니다.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에 미국이 소련의 아프간 침공을 빌미로 불참했다는 사실에 이르면 미국의 아프간 침공은 설명 불가 입니다. .

 

미국이 아무런 성과도 없던 아프간에 쏟아 부은 전쟁 비용은 약 2,600조원 이상으로 추산됩니다. 이미 전쟁비용은 미국재정에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을 안겼고, 이후 발생할 차입금에 대한 이자와 상이군인 보상비용까지 생각하면 휴유증은 엄청납니다. 아프리카 빈국의 어린이들이 한 달 10불이 없어 굶어 죽어 간다는 현실을 생각하면, 허탈과 허망함에 분노마저 치밀어 오릅니다. 군사력을 바탕으로, 정통 이슬람 국가에 무리하게 미국식 문화와 자유민주주의란 가치를 주입하려 했습니다. 친미정부 수립과 정부군 양성에도 1,300조원 이상의 천문학적인 돈이 사라졌습니다. 전쟁 참전국중 하나인 우리나라도 1조원 이상을 아프간 땅에 버린 것 입니다.

 

정통성 없이 미국에 기댄 무능하고 부패한 아프간관리들은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진 국민을 외면하고 무한용량의 빨대처럼 개인 주머니로 돈을 빨아들였습니다. 각국 정부가 쏟아 부은 엄청난 재건비용은 모래밭에 물 붓기 마냥 사라졌습니다. 가난한 나라 아프간 대통령의 자식들이 미국 맨하튼에서 초호화 생활을 하고 있다는 외신보도에서 부패의 정도를 짐작할 뿐입니다.

 

서방측은 시계를 가졌지만 우리는 시간을 가졌다고 그들은 말해왔습니다. 시대별 최강 국가이던 영국, 소련, 미국을 차례로 물리쳤기에 '제국의 무덤' 이란 애칭을 가졌습니다. 아프간과의 전쟁으로 소련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낡은 구식 소총이외 변변한 무기도 없는 탈레반에 세계최강 미국이 패했습니다.

 

50년 전 동남아의 최빈국 베트남에서 미국이 역사적 첫 패배를 당한 장면과 놀랍도록 겹쳐집니다. 필사적으로 사이공 미국 대사관 철조망을 넘던 이들과 카불공항에 몰려든 이들도 묘하게 데칼코마니처럼 오버랩 됩니다. 누구도 전쟁이 이렇게 끝나리라고 예상하지 못한 채 침략군의 앞잡이가 되었습니다. 적에 대항하는 동포가 거친 음식과 불편한 잠자리를 전전 할 때 그들은 침략군이 던져준 부드러운 음식과 편안한 잠자리에 만족했습니다.

 

카불에 탈레반이 입성한다는 소문이 돌자 미국에 가장 열성적인 충성을 보이던 이들이 먼저 공항으로 몰려 들었습니다. 반역에 대한 두려움과 처벌의 공포로 필사적으로 이륙하는 비행기에 매달렸습니다. 그들이 협력자·조력자라는 왜곡된 표현으로 포장되고 있고, 인권과 자유, 의리 운운하지만 도덕적으로나 민족 정의 차원에서 그들의 행위는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전쟁에 참가한 우리가 자기기만과 환상 속에서 인도주의적 대민사업을 했다고 주장하지만 침략군의 일원이었을 뿐인 것과 같습니다. 독립항쟁과 식민역사의 기억을 잊지 않고 있는 우리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세계 최빈국 아프간에서 탈출한 그들은 교육수준이 높고 그 사회의 혜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국가 재건의 훌륭한 자산이자 자원입니다. 기술자 대부분이 빠져나간 아프간의 사회정비는 늦어지고 발전은 더 요원해 질 것입니다. 미국·서방·한국에 남게 될 그들의 신변은 안전할지 모르지만 대부분 영원한 이방인으로 고향을 그리며 차별과 혐오의 신산한 삶을 이어갈 것입니다.

 

우리가 한국에 정착한 이주자와 난민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명확합니다. 결혼 이주 여성·이주 노동자 와 인권·종교·정치적 박해 등의 이유로 이 땅을 찾은 이방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조선족, 고려인, 자이니치, 코레아노, 카레이스키 등 재외동포들을 차별·혐오·무시·멸시하며 늘 부정적 편견으로 대한게 우리의 모습입니다. 조력자·협력자·기여자 등의 단어로 책임지지 못할 인도주의 휴먼스토리를 흉내 낸들 달라질까요.

 

명분 없는 전쟁에 동조하여 지난 20년 간 아프간을 괴롭혔습니다. 우리가 먼저 아프간에 사과해야 합니다. 아프간의 전통과 문화를 존중하고, 폐허가 된 아프간에 안정과 재건이 시작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협조해야 합니다. 아프간 민족의 귀한 자산이 고국에서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정의이고 양심입니다.

 

2021830일 미군의 오폭으로 어린이 6명을 포함한 아프간 민간인 일가족 9명의 주검을 남기고 미군의 마지막 비행기는 아프간을 떠났습니다. 언론은 미군의 배려(?)로 며칠 만에 117000명의 아프간인이 조국을 떠났다고 말합니다. 또 하나의 한 많은 디아스포라의 시작입니다. 아프간이 입은 전쟁의 피해는 참혹합니다. 미국이 떠난 땅에서는 20년 만에 전장의 총성이 멎고 승리의 축포가 밤하늘을 밝혔습니다.

 

전쟁의 책임으로 사과해야 될 미국은 자국 내의 아프간 금융자산을 동결했습니다. 다음 수순은 이라크와 리비아, 남미에서 그랬듯이 탈레반에 대항하는 반군세력을 키우고 지원하는 것입니다. 내전으로 헤어 나올 수 없는 분열과 혼돈의 아프간이 될 것입니다.

 

미국 브라운대학 부설 왓슨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 20019·11테러를 계기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10월 이후부터 20218월까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이라크, 시리아, 예멘 등지에서 929000명이 넘는 사망자와 최소 9,400조원의 비용 지출이 추산되었습니다. 전쟁관련 질병이나 식수오염 등으로 인한 2차 피해자는 제외하고 말입니다. 전체 사망자의 3분의 1387000명은 테러 및 전쟁과는 관련이 없는 일반 시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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