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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청각의 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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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안동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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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시 법흥동 안동댐 진입로에 들어서면 낙동강을 끼고 뻗은 도로 한가운데 수백 년 묵은 회나무 한그루가 버티고 서 있었다.
 조선 중엽 이명 선생이 세운 고성이씨 종택 임청각 정침과 군자정 앞이다.
 전해오는 내력에 의하면 군자정에서 과거 공부를 하던 젊은 선비가 두 그루를 심고 열심히 공들여 가꾸기 시작한데서 비롯된다. 군자정에서 수년 간 애써 공부를 하던 선비는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 한양으로 떠나면서 나무에 술잔을 치고 정성스럽게 작별 인사와 함께 등과를 빌었다. 그러고 난 뒤 한양에 올라가 급제한 선비는 회나무를 찾아와 등과를 알리며 청홍 천을 둘러 주었다.
 그 뒤 이 선비는 안동 지방에 오면 군자정을 찾았고 이 회나무에 정성을 올렸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이곳 주민들은 동신목洞神木으로 삼고 해마다 정월 보름 자정이면 제사를 지냈다. 동신목이 된 회나무는 수많은 세월 동안 수호신목으로 군자정 뜰을 지키고 있었는데, 일정 때 중앙선 철도를 가설하는 일본인이 한그루를 베어내고 즉사했다고 전한다.
 이 같은 소문이 안동에 널리 알려지면서 남은 회나무는 동신목으로 더욱 신봉됐고 이 지방 무속인들은 자정에 정신 기도를 드리기도 했다. "그 나무 건드리면 큰일 난데이" 1973년 안동댐 건설시 진입로를 개설하면서도 귀신 붙은 나무로 겁을 먹고 아무도 손을 대려고 하지 않아 잘라내지 못하고 강 쪽으로 길을 넓혀 도로 한가운데 남겨졌었다. 당시 나무를 베어내라는 당국의 지시로 삼부토건회사는 10만원의 상금을 내걸고 나무 베어낼 사람을 찾았으나 허사였다.
 이 같은 전설로 안동을 찾아 온 많은 관광객들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눠주던 회나무였으나 2008년 여름 하룻밤 사이에 온데간데없이 이 회나무가 사라졌다.
 안동시와 경찰이 나서 진상을 파악한 결과, 교통사고로 이 나무에 부딪혀 죽은 사람의 동생이 분함과 무속에 기인한 연유로 저지른 것으로 알려지면서 지금은 그루터기만 남아 있다.

                                                          (출처 : 안동의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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