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일당(愛日堂)의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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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배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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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암 이현보 영정)
지금으로부터 약 400여 년 전 조선시대 연산군 때 경상 관찰사로 있던 농암 이현보 선생이 고향의 수려한 산천도 즐길 겸 늙으신 어머님을 위하여 말년에 정계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왔다.
안동시 도산면 분천리에 애일당이라는 정자를 짓고 현판을 걸기 위하여 중국에 있는 명필에게 글씨를 받으려고 아끼는 제자를 보내게 되었다. 중국까지 머나먼 길을 가게 된 제자는 반년 만에 중국에 도착하여 다시 그 명필을 찾기에 한 달을 헤매게 되었다.
드디어 깊은 산중에 있는 그를 찾아 조선국 농암 선생에 대한 말씀을 올리며 애일당 현판 글씨를 청하였다. 그 사람은 뭐 보잘 것 없는 사람의 글씨를 받으려고 그 머나먼 길을 왔느냐고 하면서 산에서 꺾어온 칡 줄기로 먹을 듬뿍 찍더니 단숨에 애일당 석 자를 써서 내주었다.
(애일당 복원 모습)
좋은 붓에 잘 간 먹을 찍어 정성스레 써 줄 것을 기대했던 제자는 내심 마음에 차지 않았다 그건 글씨가 아니라 장난으로 휘갈긴 것 같았다.
제자는 다시 써줄 수 없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중국 명필은 이 글씨가 마음에 안 드시오? 하더니 쓴 종이를 가볍게 두세 번 흔들었다.
그러자 세 글자가 꿈틀거리더니 세 마리의 하얀 학이 되어 날아가 버렸다. 제자는
자신의 우매함을 백배 사죄하며 다시 써 줄 것을 며칠 동안 간청하였으나 결국 거절
당하고 말았다. 허나 그는, 이 아래에 내려가면 나보다 나은 사람이 있으니 찾아가 보라
고 했다.
제자는 어쩔 수 없이 그가 이르는 대로 다시 산 아래 있는 명필을 찾아가니,산중에 계신 분이 우리 스승님인데 그곳을 찾아가 보시오.
하므로, 자신이 당한 일을 소상히 밝히니, 본국에서도 별로 남에게 글씨를 써주지 않는 분인데, 특별히 조선국에서 왔다하여 써 주셨는데……. 좋은 글씨를 놓쳤군요.
하며 자기의 글씨는 스승 글씨의 반도 따라가지 못하며, 학 세 마리는 못되어도 한
마리 정도는 된다고 말하며 붓을 들어 정중히 써 주었다.
(농암 유적지 복원 낙성식)
글씨를 받아 가지고 돌아온 제자는 농암 선생께 면목이 없고 그 애석함을 누를 길
이 없어 아무에게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아다가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유서에서 이 사
실이 밝혀졌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애일당의 현판은 걸려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해 큰 홍수가 나서 정자를 휩쓸어 갔을 때 현판도 함께 떠내려가 영영
잃어버렸다고 체념을 했는데 그 곳에서 백 여리 떨어진 곳의 한 어부가 이 현판을 주
워서 들고 와 무사히 애일당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어부가 고기를 잡으려고 강에 나갔다가 무언가 물결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데 금빛 찬란
하기에 행여 금물을 입힌 진귀한 것이 아닌가 하고 급히 배를 저어 건져보니 애일당 현판이었다고 한다. 전에 있던 애일당은 안동댐 건설로 수몰이 되고 그 뒷산 중허리에 다시 옮겨 세워졌다.
(애일당 복원 모습)
(농암 유적지 복원 낙성식 행사 모습)
출처 : 안동의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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